영화 "서울의 봄"을 보다
영화를 보다 중반 어디쯤에서부터 울었다. 눈물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무엇이 그렇게 슬펐을까? 우리의 슬픈 역사가? 군인들의 죽음이? 비겁한 사람들이?
1979년12월12일 이후로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주로 젊은이들이. 꿈을 꾸며 삶의 가장 찬란한 순간들을 살았어야 할 그들이 죽었다. 그래서 슬펐나? 영화에 한 장면도 나오지 않은 그 젊은이들의 죽음이.
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1989년 연세대학교 교정에서 흰 띠를 이마에 두르고 오른팔을 높이 들었다 다시 내리길 반복하던 그 젊은이들. 그들이 목이 터져라 불렀던 그 노래들.
최류탄이 터지고 청옷을 입은 또 다른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흰 띠를 두른 그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각목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며 머리채를 휘어잡아 끌고 가던 모습이. 청옷을 입고 있었던 그 젊은이들도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자식이었을텐데, 그렇게 폭력을 써야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기억은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뚜렷해지는 기억들. 아마 언젠가 보았던 뉴스나 다큐멘타리의 한 장면이었으려나. 이젠 내 기억과 겹처지는 그런 장면들. 하지만, 점점 뚜렷해진다. 그래서 울었나 보다. 그때 내가 울부짖었어야 하는데, 그때 내가 슬퍼하고, 분노했어야 하는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비겁한 내 자신이 불쌍해서, 젊은이들이 서로 친구가 아닌 적으로 만날 수 밗에 없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파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쩌면 그때와 똑같은 방관자로 남아있을 것 같은 자괴감이 나를 감싼다. 신념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는데, 기억은 왜 이다지도 뚜렷해지기만 하는 걸까? 그때 신념을 위해 죽은 젊은이들은 다시 또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똑같은 행동을 하려나?
다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숭고한 죽음은 내 기억 속 깊은 어딘가에 선명하게 살아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이 밤 뜨거운 눈물 되어 내 볼 위로 흐른다.
2023년12월4일
나그네 임종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