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할 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Top 10
10. 수도꼭지
수돗물을 틀어 놓은 듯 쉬지 않고 말하는 사람. 숨도 안 쉰다. 통역 킬러다. 이들 중엔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사람도 있다. 재갈을 물리고 싶은 분이다.*
9. 용두사미
시작은 그럴듯하다. 상당히 논리 정연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듯하다. 언 듯 상당한 인텔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론은 유야무야,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한다. 통상 이런 분들은 "오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는식으로 말문을 연다, 하지만 정작 두가지만 이야기하고 끝맺는다. 통역을 듣는 사람 입장에선 통역이 잘 못했다고 생각하지 설마 오리지널 스피커가 세 가지 중 두 가지만 말했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8. 팔방미인 (북 치고 장구 치고)
사람이 북도 치고 장구도 칠 수는 없다. 손이 두 개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분들이 계시다. 본인께서 한국어로도 하시고 영어로도 하시고, 통역이 할 일이 없다. 간단한 인사말 정도라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으나, 되는 말 안 되는 말 다 섞어가시며 2개 국어로 말씀을 다 하신다. 물론 통역이 언제나 통역을 해야만 자기 역할을 다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때로는 말 없는 통역이 최고의 통역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피커의 영어 실력이 네이티브 수준이 안되고 또 자리가 공식 석상인 경우, 가능하면 통역을 활용하자. 듣는 사람 입장에선 언제 한국어가 끝났고 영어가 시작됐는지 조차 모르는 때가 있다. 본인의 영어 실력은 사석에서도 얼마든지 자랑할 수 있다. 공석에선 통역을 활용하자, 사실 그게 더 멋있다. 아름다운 한국어로 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함께 자리한 한국인들에게 자랑하자.
7. 실내 전봇대 (절대 못 비켜)
동시통역할 때 꼭 있다. 부스 앞에서 절대로 안 움직이시는 분. 대체적으로 엉덩이가 크거나, 배가 많이 나와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시를 하려면 연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부스 앞에 서서 절대로 안 비킨다. 부스 안에서 파리채를 점잖게 몇 번 흔들어도 보질 않는다. 부스창을 두들기면 살짝 뒤를 돌아보는 경우도 있는데, 30cm 이상은 안 움직이신다. 그나마 예의가 있다는 분은 내 파트너 앞으로 가서 파트너의 시야를 가린다. 손가락을 snap하면 4차원의 세계로 사물을 뿅하며 살아지게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인데, 완성되면 제일 먼저 적용해보고 싶은 대상이다.
6. 돌아온 전봇대 (금붕어)
금붕어는 아이큐가 3이라고 한다. 지렁이 미끼에 속아 낚싯바늘에 걸린 금붕어를 놓아 주면, 돌아서서 다시 덥석 지렁이를 문다고 해서 3초짜리 기억력, 아이큐 3이라고 한다는데, 인간 중에도 기억력이 안 좋은 사람이 있다. 일명 돌아온 전봇대. 가까스로 부스에서 떨어지도록 좋은말로 타일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온다. 본인께서 기억력이 안 좋은 것인지, 통역이 자기를 기억 못 할 것이라 생각해서 그러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 분의 "꽈"가 금붕어 과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듯.
5. 단어 왕
자기가 원하는 영어 단어가 안 나오는 경우, 그것은 오역이라고 지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모든 단어는 일대일 통역이 된다고 믿는 분들. 본인께서 영어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온전치 않다는 데에 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구글 번역기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돌려보자: "땅 짚고 헤엄치기"는 "land point out swim"이라고 나온다. "그림의 떡"은 "pictures of cake"라고 나온다. 단순히 단어를 조합한다고 해서 올바른 통역이 될 수는 없다. 화자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어야 올바른 통역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때때로 꼭 사용해야만 하는 영어 단어가 있을 순 있다, 그런 경우 화자가 그 단어를 영어로 해주면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단순히 어느 특정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오역이라고 하면 정말 섭섭하다. 집에 가실 때 꿀밤을 한 바구니 드리고 싶은 분이다.
4. 길치
네이버 사전은 "길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길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이 매우 무디어 길을 바르게 인식하거나 찾지 못하는 사람." 그렇다 파워포인트 발표를 할 때 레이저로 가리키는 부분하고 자기가 하는 말하고 일치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길치다. 자기가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분들. 길치가 헤맬 때 통역을 듣는 청중은 통역이 헤맨다고 생각한다. 스피커가 길치라서 헤메고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아마 스피커 본인께서도 발표자료를 직접 준비한 것이 아니고, 남이 준비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이해는 해 보려고 하지만, 역시 통역을 바보로 만든 죄는 용서하기 힘들다. 쉬는 시간에 레이저를 숨겨 버려야 한다.
3. 하늘 천 따 지 (읽기 왕)
예전에 우리 선조들이 한자를 배울 때는 하늘 천 따 지 하는 식으로 큰 소리로 책을 읽으며 글을 배웠다. 글을 읽는다고 하는 것은 글을 깨우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졌다. 그러니까 많이 읽는 서동이 더 많이 배우는 것이었다. 漢子가 가진 특성 때문이다. 漢子(한짜)는 표의 문자로서 하나의 음절을 이루는 한 자(한 字)가 하나의 개념을 나타내기에 음절 하나 하나를 곱씹으며 그 음절이 가진 의미를 배우는 것이다. 마치 소가 되새김질하는 것처럼 그렇게 곱씹으며 말이다. 그래서 漢子를 배울 때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읽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한글은 그럴 필요가 없다. 한글은 소리글이다. 음절 하나하나엔 의미가 없다. 음절이 모여 단어가 이루어진 경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한 자 한 자 또박 또박 읽는다고 해서 한글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다. 똑 같은 음절을 반복해서 읽는다고 해서 그 음절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말을 할 때 또박 또박 써가지고 온 원고를 읽어 내려가는 분들이 계시다. 본인은 아마 수 백번 읽어 본 내용이기 때문에 빨리, 또박 또박 읽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분의 말씀은 영혼이 없다. 차라리 녹음기를 보냈으면 더 좋을 뻔했다. 시대를 잘 못 알고 태어난 분이시다. 한편으로 가엾기도 하지만,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이 분을 통역할 땐, 또박 또박 목소리의 고저 없이 통역한다.
2. 矛盾
모순이란 모든 방패를 뚫는 예리한 창과 모든 창을 막는 견고한 방패를 함께 파는 상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스피커 중에 논리적이지 못한 분들이 간혹 계신다. 한참 통역을 하다 보면 처음에 한 이야기하고 나중에 하는 이야기하고 서로 상반된 경우가 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하지만, 점잖은 체면에 그럴 수는 없고, 울분을 속으로 삭일 뿐이다. 말씀하시는 분의 말이 앞뒤가 안 맞으니, 통역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말씀하신 대로 옮기자니, 듣는 사람은 혼란스러워할 테고, 통역을 잘 못 고용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 것이다. 이런 경우 새겨 들어 통역을 해야 하는데, 이 분이 창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건지 방패에 대한 말인지 그 의중을 잘 파악해야 한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분이라면 의중을 파악할 길도 없다. 대충 얼버무릴 수 밖에 없는데, 정말 고역이다. 다시 한번 말씀해달라고 하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하신다. 아마 창, 방패 외에 갑옷 이야기를 하실 것이다. 통역 윤리가 도전받는 상황이다.
1. 부스의 아인스타인
스피커 중에 길치가 있다면 통역 중엔 시간치가 있다. 15분씩 교대로 통역을 하기로 해놓고, 정작 본인은 20분도 훨씬 넘어서 교대를 해 준다. 교대하고 나선 10분도 안돼서 다시 교대하자고 한다. 통역 시간에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는 듯. 자기 시간은 빨리 가고, 타인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고 믿고 있는 통역. 통역비를 두 배로 준다면 차라리 혼자 통역을 하고 만다.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는 분들 대부분은 실력이 모자란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다. 이런 분들은 친화력이 대단하거나 생존능력이 뛰어나다.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분들이다. 여기에 또 다른 비극이 존재한다.
* 재갈을 올바르게 물리기 위해선, 조그마한 조약돌을 입안에 먼저 넣는다, 그다음에 손수건이나 헝겊 등으로 돌을 뱉을 수 없게 입을 가린다. 공업용 테잎을 사용할 수도 있겠으나, 떼고 나면 피부 트러블이 생길 수 있으며, 재활용이 가능하지 않다. 돌이 너무 작으면 삼켜 버릴 수 있고, 너무 크면 숨이 막힐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크기의 돌을 사용해야 한다.
동시통역사/ 미국변호사 임종범 (James Yim Victory)
©Copyright 2015 James Yim Vic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