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preta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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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통역 현장에서 쌓인 실제 사례와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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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간밤엔 눈비가 내렸습니다. 날씨도 많이 추워지고요. 이번 겨울엔 눈이 많이 오려나봐요. 거리엔 길 치우는 트럭이 한창 바쁘게 다니는 소리. 방 안엔 오래된 시계의 초바늘 움직이는 소리가 나네요. 엄마 심장 뛰는 소리도 우렁찬거죠?


멀어서 그런지 잘 안 들리네요. 많이 보고프네요 엄마. 제 목소리 잘 들리세요?


오늘도 눈을 뜨니 눈물이 나네요. 하루를 눈물로 시작해서 되겠어요? 빨리 엄마를 만나야 할 텐데. 그럼 아침에 웃음만 가득하겠지요. 엄마 사랑해요. 버지니아에 계실 때 더 자주 고백했어야 하는데, 아직 늦지는 않았죠? 하긴 이미 알고 계셨지만 말예요. 그렇죠? 아들 맘 엄마는 이미 알고 계셨죠?

히히 “맘”이란 말이 영어에선 엄마란 말인데, 그러면 “맘”하고 “엄마”는 동의어네요. 아들 맘을 아는 사람은 엄마, 그렇게 되나요?


“삶”이라는 말도 “사람”이란 말이 줄어서 됐다고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 사전에 나와 있다네요. 또 “사람”이란 말은 원래 “사랑”이란 말하고 그 뿌리가 같데요. 그러니까 사랑하기에 사람이라 부른다는 거지요. 히히 그것도 믿거나 말거나 사전 이야기였습니다. 재미 있지요?


우리말은 정말 재미 있어요. 아기자기하고, 오묘하고, 현기가 있는 우리말이에요. 미국말은 멋이 없어요. 딱딱하기만 하고 여운이 없어요.


“여운”이 뭐냐고요? 그건 새가 날아간 뒤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이에요. 잠깐의 추억 같은 거죠. 그 가지의 흔들림도 곧 멈추고, 모든 것은 원래의 고요함으로 돌아오는거죠. 하지만 가지의 떨림이 없었다면, 새가 그곳에 있었다는 걸 모를 수도 있겠지요. 너무 작은 새라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일 수도 있거든요.


금년 봄에 고마운 최계옥 사모님 덕에 들이며, 산이며 나녀 오셨죠? 그 때 제가 작은 새가 되어 엄마 주위를 맴돌았는데, 저 못보셨죠? 하지만 제가 앉아있던 가지의 흔들림은 보셨죠? 제 작은 날개로 일으킨 바람도 느끼셨죠? 정말 그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짹 소리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크크.


내년 봄에 저하고 들판이며, 산이며 마구 쏘다니자고요. 강원도 삼척이며 철암도 가보고요. 큰 나무 밑에서 갓 가마에서 나온 순두부 한 그릇 어때요? 반찬은 없다네요. 그저 풋고추 숭숭 썰어 넎은 간장 한 종지.

엄마가 냇가에서 빨래 할 때, 제가 발로 물을 찼다지요? 히히, 이제 와서 얘긴데, 제가 장난 친 거예요.

어린 저를 늘 포대기에 싸서, 등에 업고 다니셨다지요. 그래서 저는 안짱 다리인가봐요. 이 다리를 보면 엄마 생각 많이 날거예요. 그리고 고마워요, 튼튼한 안짱다리를 주셔서. 히히.


엄마에게 고마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불평하지 않고 늘 감사하며 사는 삶을 보여주신 엄마이기에 감사.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늘 모자람 없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또 공부 시켜주셔서 감사. 그러고 보니 우리 삼 형제 모두 박사까지 공부했네요. 공부할 땐 내 머리가 좋아서 어려운 공부한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늘 나와 함께 하신 엄마 아빠가 계셨네요.


모래 위의 발자국처럼 내가 홀로 왔다 생각한 그 길엔 내 발자국이 아닌 엄마의 발자국이 있었네요. 다 큰 이 아들을 여전히 포대기로 싸서, 등에 업으신 엄마의 발자국. 그래서 아버지 등도 휘시나봐요. 우리 삼 형제 골고루 업어주시느라고. 히히.


훈이가 이 글을 다 읽어 드리려면 고생 좀 하겠네요. 막내가 곁에 있으니 좋으시죠? 저도 훈이가 있어 마음이 편하네요. 엄마 곁에 아무도 없었다면 이 아들은 무척 슬플 거예요. 안암병원 앞에 치킨 집이 있는데, 전기구이 통닭이 맛있더라고요. 이번에 가면 자주 먹을 수 있겠네요.


한국도 날씨가 많이 춥다는데, 따뜻하게 입고 가야겠지요?


나는 이 아침 행복해요 엄마. 몇 밤만 더 지나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러 가거든요. 그 여자가 누구냐고요? 히히 그건 비밀이에요. 힌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쁘고, 귀엽고, 멋진 여성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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