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preta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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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리기

버린다는 것은 무척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지난 10여 년간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책도 막상 버리려면 망설여진다. 30여 년 전에 쓴 일기는 더욱더 그러하다. 색깔마저 누렇게 변한 일기장. 지난 세월 한두 번만 들여보았던 일기장인데 왜 이렇게 버리기가 힘든지.
왜 버려야 하냐고 당신은 내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
글쎄. 버린다는 것 미니멀리스트로 산다는 것, 그것은 철학이고 삶의 방식인 것이야. 이제까진 무엇인가를 모으고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 누리기 위해 살아온 삶이라면 미니멀리스트의 삶이란 버리는 삶이지.
왜 그렇게 버려야 하냐고 당신은 여전히 물을 수 있겠지. 글쎄, 이건 일종의 깨달음이야. 가르켜줄 수도 배울 수도 없는, 다만 어느 한 때에 찾아드는 깨달음.
버려야 한다는 깨달음. 더 이상 물질에 얽매어 살아선 안 된다는 깨달음이지. 무엇인가 얻으려하고, 소유하려 할 때 욕심이 일고, 욕심은 우리의 온전함을 깨뜨리지. 아무것도 얻으려고도, 소유하려고도 하지 않을 때, 그땐 어떨까?
물론 나도 이제 겨우 걸음마만 뗐다. 초입인 것이다. 과연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나 자신도 버릴 수 있으려나? 그것이 해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머니 아버지가 안계시는 이 땅에 나는 큰 욕심 없다. 꼭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 것도 아니요, 지켜내야 할 것도 몇 안된다.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살지만, 내 삶의 의미는 예전같지 않다. 어머니의 큰 웃음, 아버지의 잔잔한 미소가 내 삶의 크나큰 기쁨이었음을 작금에야 깨달는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이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라는 것을 느끼며, 나는 다시 버린다.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버려야 참으로 무소유의 삶을 산다고 할 수 있을까? 목적지는 불분명하지만, 여하튼 다시 떠난다.

2019년12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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