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pretation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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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통역 현장에서 쌓인 실제 사례와 인사이트

통역 이야기

71개의 관련 게시물이 있습니다.

통역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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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의 고민

이제 나이가 꺾어진 백이다. 고민이 하나 있다. 예전엔 신조가 "짧고 굵게"였는데, 이젠 "가늘고 길게"로 바꿔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나이가 들며 원수는 늘어만 간다. 나의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썩어 문드러지실 분들이 있다. 기억력이 감퇴하면서 저절로 용서된 분도 여럿 계시지만, 여전히 원수의 수는 늘어만 간다. 이제 내가 직접 원수 갚긴 힘들다. 아니 위험하다. 원수의 능력은 대단하기 때문이다. 또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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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사

친구, 누군가 내게 물었네, 백만 불을 줄 테니, 팔 하나를 달라고. 물론 난 거절했네. 나에겐 백만 불이라는 돈보다는 팔이 더 귀한 것이니까. 손가락 한 마디 정도라면 생각해 볼 수도 있겠으나, 팔 하나는 너무 손실이 크다네. 백만 불 이상 가치가 있는 팔이 둘이나 달려 있으니, 나도 상당한 재력가라 하겠네. 어떠신가 친구, 친구는 자네 팔 하나를 백만 불과 바꾸겠는가? 우리 답이 서로 같다면, 술잔을 높이 들고 건배하세. 내가 마는 소맥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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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잠 못 드는 밤

Villa Florence,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이다. 회사 일로 어쩔 수 없이 시내 한복판에 숙소를 잡았다. 파웰과 기어리가 만나는 이곳은 늦은 밤까지 케이블카가 지나는 소리가 난다. 따그르륵 따그르륵 쉬지않고 케이블이 움직인다. 트럭이며 버스가 지나가며 내는 굉음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골목 어귀 어디선가 떠돌이 악사가 전자 바이올린을 켠다. 생축, 요단강 건너 등 몇 개 곡을 계속 연주한다. 솜씨는 별로지만 끈기는 대단하다. 몇 시간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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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기증

운전면허증에 나도 이제 장기 기증자로 표기된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몸, 이 한 몸 죽을 때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뜻 없는 죽음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 Coma 라는 책을 읽었다. 30년도 더 된 일이다. 그 책에 장기 기증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있었는데, 그 후론 장기 기증이 무서웠다. (여하튼 어릴 때 좋은 책을 읽어야한다). 하지만, 영혼의 존재를 믿으며 육체의 유한함을 느끼는 요즘, 죽음은 두렵지 않다. 다만, 의미없이 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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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야기

아버지 발톱을 자른다. 하얀 발가락에 난 발톱. 많이 자라진 않았지만, 살짝 발가락 마디를 벗어난 것들이 몇 있다. 아버지 발톱은 처음 자른다. 나흘 전엔 아버지 손톱을 잘라드렸다. 그때도 역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톱을 잘라드렸다. 아버진 언제나 손톱, 발톱을 단정하게 가꾸셨고, 코털이나 귀털이 빗겨나오는 경우가 없으셨다. 늘 매무세를 돌 보셨고, 청결을 유지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욕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막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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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 시간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준다고. 하지만 기실,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일 뿐 나아진 것은 없지. 인간의 머리라는 게 어제 일보단 오늘 일을 더 잘 기억한다고. 안 그렇다면, 과부하가 걸릴 거야.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이 지독한 상실감은 어쩔수가 없네. 외팔이도 때론 없어진 팔이 가렵다는군. 무엇인가 있었던 그 자리. 처음부터 없었다면 차라리 모르겠으나, 있던 그 자리에 무엇인가 없다는 것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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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를 돋보기로

50줄에 들어서며 몸에 여러 가지 변화가 왔다. 그중 하나가 시력이다. 글씨가 작으면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안 보이면 멀리 놓고 읽어야 한다. 그래도 안 보이면 불빛이 더 밝은 곳으로 그래도 안 보이면 글씨가 쓰인 종이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각도를 바꿔본다. 그러다 동생 병만이로부터 기발한 아이디어를 듣는다. 카메라로 찍어 키워보라고. "키우라니?" 확대해보란 이야기겠지. 여하튼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는 동생이지만 표현력 하난 청춘이다.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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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아버지 집엔 창이 무척 넓은 발코니가 있었다. 내가 아버지를 뵙고, 아버지 집을 떠나올 때면 아버진 늘 그 창으로 나오셔서 손을 흔들어 주셨다. 아버진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이미 거동이 상당히 불편하셨다. 생활은 대체로 침대에서 하셨고, 몸을 일으켜 세우는 일조차 힘들어하셨다. 걷는 일은 물론 더더욱 힘들어 하셨다. 허리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오시는 듯. 아버진 펜타닐 패치를 사용하고 계셨다. 전엔 하이드로코돈과 옥시코돈을 번갈아 가며 복용하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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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길 거부한 남자

"내가 신이라면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겠노라"라고 아나톨 프랑스 Anatole France는 말했다. 그렇다면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둔다면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인지 궁금해진다. 나이가 들며 옛날 일이 더 자주 생각난다. 내일을 생각하기보다는 어제를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요즘이다. 내 삶의 청춘이 끝났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청춘이라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오십견 오고, 머리 빠지고, 허리 아프고...과연 몸은 청춘이라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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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리기

버린다는 것은 무척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지난 10여 년간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책도 막상 버리려면 망설여진다. 30여 년 전에 쓴 일기는 더욱더 그러하다. 색깔마저 누렇게 변한 일기장. 지난 세월 한두 번만 들여보았던 일기장인데 왜 이렇게 버리기가 힘든지. 왜 버려야 하냐고 당신은 내게 물어볼 수도 있겠지. 글쎄. 버린다는 것 미니멀리스트로 산다는 것, 그것은 철학이고 삶의 방식인 것이야. 이제까진 무엇인가를 모으고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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