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나던 날
미국무부 언어과 소속의 계약직 통역사로서 때때로 연방지법 통역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버지니아에 살기 때문에 버지니아나 와싱톤 DC인 경우 법정에 직접 나가 통역을 하지만, 만약 지법이 멀리 있는 경우 주로 전화로 통역을 한다. 물론 사건 심리가 여러 날에 걸쳐 일어나는 경우 출장을 가야한다.
그날은 플로리다 연방지법에서 열린 형사 사건 심리였고, 나는 전화로 통역을 했다. 당시 피고인은 65세의 한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성매매, 불법체류, 세금 포탈 등의 혐의로 잡혀왔고, 그 날의 심리 내용은 추방을 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
내용인즉 그녀는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하다 급습한 연방 경찰에 의해 잡혔던 것이다. 그녀는 당시 성매매 업소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홀에서 일을 하고 있던 아가씨들과 함께 잡혀 온 것이다. 65세의 나이였기에 직접 성매매를 했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녀는 한국 시민으로 미국에 불법 체류를 하고 있었으며, 그 녀는 오랜동안 미국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세금을 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아주 젊은 시절부터 이러한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녀의 딸과 아들이 정상참작을 요구하며 증언을 했다. 그녀의 딸과 아들은 그 들의 엄마가 얼마나 자식들을 위해 헌신을 했는지에 대한 증언을 하였다. 그 들의 아빠는 어릴 때 집을 나갔고, 홀 어머니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성매매 업소를 전전하였던 것이다. 어렸을 땐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으나, 아이들은 엄마를 사랑했으며,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아이들을 키웠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아이들은 엄마가 어디서 일을 하는지 알게 되었으나, 아이들을 위해 헌신한 그 엄마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변치 않았다고 했다.
이제 아이들은 잘 자라서, 딸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아들은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해 어엿한 장교가 되었다. 이런 어머니의 헌신이 있었기에 딸과 아들은 미국에서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비록 엄마가 천대받는 일을 하고 신분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젠 자식들과 함께 미국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그 녀의 자식들은 증언을 했다. 증언은 영어로 이루어졌고, 영한으로 한 나의 통역은 법정의 스피커를 통해 피고인에게 들렸을 것이다. 증언 내용을 통역하며 어느덧 나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통역하는 내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이젠 너무도 오래 된 일이라 당시의 내용들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분의 자식들의 이야기가 그분에게 제대로 전달되었길 바랄 뿐이다.
판사가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흔히 법엔 눈물이 없다고 하는데, 정상참작이 됐을는지 아니면 법대로 추방이 됐을는지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하지만, 어떤 결정이 났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다. 다만, 그들 남매의 애틋한 마음이 엄마에게 제대로 전해졌길 바랄 뿐이다.
* 그녀는 이미 혐의에 대해선 잘못이 있다고 판결이 난 상태였고, 이 날은 형량에 대한 심리가 열린 날이었다.
동시통역사/ 미국변호사 임종범 (James Yim Vi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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