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있었던 일
통역이란 일을 하다 보면 왕왕 전혀 몰랐던 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세계내부감사대회"에서 통역을 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대회였는데, 2,500 여 명의 내부감사인이 모인 큰 회의였다. 한측 참석인원은 200여명.
사실 나는 "내부감사" 또는 "내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잘못한 사람을 찾아 벌을 주는 그런 기관으로만 생각을 했다. 내부감사인이란 잘못이 있는 사람에겐 염라대왕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보통 사람들은 가까이 하길 꺼려하는 그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조직에선 필요악 같은 그런 존재로 나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회 통역을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조직 내 구성원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내부감사인이 하는 일 중에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구성원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기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검증 과정 중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어 예산을 제대로 운용했는지, 출장비는 가로챈 것이 없는지, 영수증에 나와 있는 대로 지출이 일어난 것인지 등에 관한 내역을 검증하는 일 등은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검증인데, 내부감사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부감사는 오히려 현재의 조직이 미래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이런 이야기가 낯설기도 하고 해서 그냥 어떤 희망성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내부감사가 이런 기관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하는 식의 어떤 건설적인 제안 정도로 생각했는데, 대회가 진행되면서 나의 이런 생각은 상당히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래지향적인 내부감사 업무는 이미 학문으로서 상당한 체계가 서 있으며 위험관리 (Risk Management) 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미국 조직에서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흘에 걸쳐 지속된 대회는 위험관리란 무엇이며, 성공 사례, 실패 사례 등이 어떤 것들이 있었으며, 효과적인 위험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많은 연사들의 발표가 있었다.
위험관리는 궁극적으로 미지에 대한 준비라는 여러 연사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감명 깊었다. 미지란 단어는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것도 포함한다는 점이 특기할만한 내용이었다. 이러한 위험관리는 조직의 면모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내부감사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으나, 나중엔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 그런 대회였다.
2015년 여름, 밴쿠버에서 열린 "세계내부감사대회"는 내게 있어 통역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준 소중한 대회였다.
본 글을 쓰도록 권유해 주신 한국감사협회 변중석 회장님께 감사드린다.
동시통역사/ 미국변호사 임종범 (James Yim Victory)
©Copyright 2015 James Yim Vic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