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법을 다루다 보면, 우리말로 번역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단어가 많다. 그런 단어중의 하나가 "identify" 라는 단어다.
우선 네이버 사전을 뒤져 본다:
Identify = (신원 등을) 확인하다 [알아 보다]; 찾다, 발견하다; (신원 등을) 알아 보게 [인정 하게] 하다.
역시 미국법에서 사용하는 용법과는 거리가 멀다. 법률 용어 사전을 찾아 보면 "식별하다"라는 말로 번역이 되어 있다. 아므래도 일어에서 따 온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반인이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아이덴티파이라는 말은 디스커버리에서 또 재판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증인에게 어떤 서류 또는 어떤 내용(통칭 "증거물")에 대하여 "그 것이 무엇인지 말을 해 달라"고 요구 하는 행위다. 만약 증인이 그 증거물이 무었인지 모른다면 증인에게 그 증거물에 대한 추가 질문은 무의미 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알아 보시겠습니까?" (Do you recognize?)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이덴티파이를 요구하는 경우, 증인이 이미 알아 본다는 가정이 설정된 것이다.
30(b)6 증인의 경우, 지정된 토픽에 속한 서류가 증거물로 제시 되었다면 바로 "증거물이 무었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고 질문할 수 있는 것이다. "알아 보시겠습니까?"의 단계를 건너 뛰는 것이다.
이야기가 다소 기술적으로 흘렀는데, 기본적으로 identify 라는 말의 올바른 통역은 "무었인지 말하다" 이며 [데포지션의 경우], 올바른 번역은 "무었인지 밝혀 주십시요"가 된다 [서류 제출 요구의 경우].
예1:
질문: 증거물 3번이 무었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답변: 예.
질문: 말씀해 주십시요.
답변: 레시피입니다.
질문: 어떤 레시피입니까?
답변: 옥시진 레이어 형성에 관한 레시피입니다.
예2:
질문: 증거물 9번이 무었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방어: 이의. 범위를 벗어 났음.
답변: 아니요.
질문: 왜 무었인지 말씀해 주실 수 없는 것이지요?
답변: 제가 작성한 자료가 아닙니다.
질문: 증인은 30(b)6 증인으로서 회사를 대표해서 이 자리에 나와 계시다는것을 알고 계시지요?
답변: 예.
질문: 증인은 플로팅 게이트의 구조에 관한 증언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계시는 것이지요?
답변: 예.
질문: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증거물 9번이 무었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방어: 이의. 범위를 벗어 났음. 반복되는 질답.
답변: 아니요.
질문: 증거물 9번을 한번이라도 보신적이 있습니까?
방어: 이의. 범위.
답변: 아니요.
질문: 증거물 9번은 플로팅케이트의 구조를 보여주는 템 사진입니다 그렇지요?
방어: 이의. 범위.
답변: 그렇게 보입니다.
질문: 사진을 보시면 플로팅케이트의 하부에 날개모양의 윙이 보이지요?
방어: 이의. 범위.
답변: 나는 낸드에 대한 증언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이것은 노아 플래쉬로 보여집니다.
해석:
예1에서는 증인이 증거물로 제시된 내용이 무었인지 확인해 줄 수 있었기에 추가 질문을 해도 되는 상황이다. 예2에서는 증거물로 제시된 내용이 무었인지 증인이 확인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하기에, 무엇인지 아이덴티파이를 못 해주는 (예문에서는 안 해주는) 경우 추가 질문은 큰 의미가 없다. 추가 질문을 한다고 하여도, 얻어지는 답변은 증인의 개인 자격 증언일 뿐이다. 더 이상 회사를 대표하는 증언이 아닌것이다. 흥미 차원에서 또는 학습 차원에서 추가 질문을 할 수는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시간 낭비 (waste of time)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만약 아이덴티파이를 한 경우, 그 때부터는 그 증거물에 대한 답변을 성실히 해야 한다. 아이덴티파이를 해 놓고, 나중에는 잘못 봤다고 주장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아울러, 아이덴티파이를 해야만 하는 증거물임에도 그것이 아이덴티파이 가능하지 못한 경우, 그 증인은 자격 미달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증인 또는 학습 후에 데포지션 속개를 필요로 하는 내용이다.
특허분쟁 전문통역사/ 미국변호사 임종범 (James Yim Vi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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